1930년대 인천에서 사회주의 계열로 항일 운동을 벌였던 김점권(왼쪽)과 이두옥. <사진=인천역사문화센터>
1930년대 인천에서 사회주의 계열로 항일 운동을 벌였던 김점권(왼쪽)과 이두옥. <사진=인천역사문화센터>

(앵커)

인천의 항일운동을 재조명하는 시간, 오늘은 국가 유공자 명단 오르지 못한 항일 운동가들을 살펴봤습니다.

지역사회의 무관심 속에 구체적 행적은 물론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일부는 사회주의 계열로 활동했다는 이유로 평가 대상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강신일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인천역사문화센터가 찾아낸 인천의 항일 운동가는 모두 72명.

일제강점기 치열한 항일 운동을 벌여 감시대상에 올랐던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이 중 현재 국가보훈처에 유공자로 등록된 이는 단 10명에 불과합니다.

3.1 만세운동과 관련된 행적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합니다.

1990년 문무현, 심혁성, 염성오, 유봉진 지사가 애족장, 1993년 이난의 지사가 건국포장에 추서됐습니다.

최봉학 지사는 2008년 애족장, 최선택 지사는 2017년 건국포장에 각각 추서됐습니다.

이 밖에 1935년 중앙고보교 1학년으로 반제국주의 운동을 벌였던 황원태 지사는 2006년, 1935년 1차 공산청년동맹에 가담했던 한영돌 지사는 2008년에 애족장에 추서돼 국가 유공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수의 항일 운동가들이 국가 유공은 고사하고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터뷰 / 김락기 인천역사문화센터장]
"인천에서 이런 항일 운동을 했었다는 것 자체를 잘 몰랐던 거죠. 후손들만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시 차원에서도 할 수 있거든요. 그 부분에 대해서 저희도 인천시와 의논할 생각은 있습니다."

일부는 항일 운동을 한 사실이 확인되고도 사상 등의 이유로 제대로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1930년대 인천지역 항일 운동의 주류를 이뤘던 사회주의 계열의 항일 운동가들이 대표적입니다.

메이데이 격문 사건을 비롯해 일제 감시대상 인물카드에 네 차례나 이름을 올릴 정도로 일제로선 요주의 인물이었던 김점권.

인천상업학교 동맹휴교, 조선공산당 재건사건 등 인천의 굵직한 항일 운동에 앞장섰던 이두옥.

인천상업학교 출신의 유명한 사회주의자였던 이승엽까지.

해방 후 남로당,조선 최고인민회의 등 사회주의 계열 조직에서 활동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잊혀져 왔습니다.

그러나 해방 이후 행적으로 항일 운동 인정 여부를 판단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앞서 2008년 애족장에 추서된 한영돌 지사도 사회주의 계열 인사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해방 이전에 순직해 평가가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 김락기 인천역사문화센터장]
"역사학계에선 1945년 이전 행적으로 공적을 평가하자는 것이 대체로 인정하는 범위인데, 일반 시민들의 인식과는 어느 정도 괴리가 있는 것이죠. 일제 당시의 활동의 평가라기 보다는 해방 이후 분단의 과정이 가져다 준 현실인 거죠."

엄혹한 시대, 일제에 저항했던 인천의 항일 운동가들.

이들을 찾아내고 재조명하는 일에 지역사회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절실합니다.

경인방송 강신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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