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는 더 작고 연약한 곳을 향한 사랑이었다.
■ 성탄절 이야기는 낙인찍히고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
■ 톨게이트 노동자, 스텔라 데이지호 실종자 가족 등 아픈 사람들 생각하는 성탄절 되야.

■ 방송 : 경인방송 라디오 <김성민 PD의 시사토픽>

■ 진행 : 김성민 PD

■ 인터뷰 : 자캐오 성공회 신부

* <다시듣기>: https://hoy.kr/XcCOL

◆ 김성민 PD: 시사토픽 2부 시작하겠습니다. 성탄절 아침입니다. 성탄절이 오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설레하죠. 또, 분위기에 맞는 노래를 틀면서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단순히 성탄절이 빨간날, 쉬는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고 받는 날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자캐오 성공회 신부와 함께 예수탄생의 의미, 현재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에 대한 얘기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 자캐오: 안녕하세요.

◆ 김성민 PD: 이 시간에 오랜만에 신부님 목소리 듣는 것 같습니다. 제일 먼저 궁금한 게 크리스마스라는 성탄절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궁금해지더라고요.

◇ 자캐오: 12월 25일을 맞이해서 탄생도 기념하는 교회가 주로 그레고리력이라고 얘기하는 달력을 사용하는 천주교나 성공회, 개신교 등의 서원 교회가 있고요. 러시아 교회같은 동방 교회들은 율리우스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체계적인 성탄절을 기념한다는 것을 알려드리면서 시작하면 좋을 것 같고요. 성탄절은 2000년 전에 태어난 진짜 생일이라기보다는 거룩한 탄생의 의미와 정신을 함께 기념하고 동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교회의 실천이라고 얘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요새는 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서원교회를 기념하는 12월 25일은 원래 로마제국의 태양신을 기념하는 날이었죠.

그러다가 로마제국이 국교가 된 이후에 350년 경에 탄생을 선포하고 점차 그 속에 중요한 자리를 잡아가는 거고요. 이것을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많은 분들이 그리스교의 유연한 토착한 능력이라고 말을 해요. 예를 들어 저희가 장식으로 많이 사용하는 성탄트리 같은 것도 원래 있었던 건 아니고요. 각 나라에서 자리잡게 되면서 원래 있던 그 나라의 풍습이 그리스와 만나서 토착화 된 과정이 성탄절이기 때문에 성탄절은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좋지 않을까 합니다.

◆ 김성민 PD: 그렇군요. 또 궁금한 게 왜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을까? 귀족이나 왕족도 아니고. 왜 태어날 때 마굿간에서 태어나셨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어요. 더 좋은 자리에서 태어나셨을 수도 있는데요?

◇ 자캐오: 성탄의 정신을 얘기할 때 어떤 그리스신화에서 얘기하는 조금 어려운 말로 얘기하는 인카네이션, 성격신이라고 얘기하는데요. 저는 사람이 대신 하는 일이라고 소개를 합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었다는 표현인데 아마 아실 것으로 생각하는데 동화 강아지똥 작가가 알려준 권정생 선생님이 계시잖아요. 그 분도 유명한 그리스도교 신자 분 중 한 분이신데요. 이 분이 쓴 장편동화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책에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오는데요.

간단하게 인용하면 '하느님은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어 가장 밑바닥에서 남을 섬기는 종의 몸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죄 많은 사람과 함께 서로 도우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물질은 힘센 사람이 차지하는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나누며 써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새도, 들에 피어나는 조그만 꽃 한 송이도, 하느님은 함께 살도록 하셨습니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 표현 그대로 아디우스의 탄생 이야기와 실제 이야기 아니면 그리스교의 각색된 이야기이던 간에 저는 중요한 건 성탄절 핵심이 방금 얘기한 권정생님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요. 정리해보면 첫 째는 우리보다 넓고, 깊고, 높고, 크게 표현하는 하느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었다 라는 것. 이를 통해서 사랑이라는 게 더 작고, 연약하고, 낮은 곳을 향해 하는 사랑이라는 것을 보여주셨고요.

두 번째는 예술을 통해서 가장 밑바닥에서 노동하는 사람으로 신을 믿고 따르는 것부터 여러모로 깨지고 상한 것들끼리 도우며 살라고 하셨다 라는 것. 심지어는 들판의 꽃과 새와 짐승들 모든 존재들이 되어서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세 번째인데요. 실천하며 살 때 돈이라는 것은 하나의 활용 도구일 뿐 절대 섬기는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질문 하셨던 성탄의 정신. 그래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난 것을 강조했고, 하필 마굿간에서 태어났던 것을 이야기로 전하는 건 이와 같은 윤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김성민 PD: 그렇군요. 가장 밑바닥에서 노동하는 사람으로 태어나게 하셨던 의미를 기억해봐야 할 것 같아요. 신부님께서 SNS에 쓰신 아기예수 탄생과정에 관한 글을 읽었어요. 낙인 찍히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이들이 마리아와 요셉, 아기예수였다고 하시는데 왜 그랬던 걸까요?

◇ 자캐오: 저 같은 사람이 쓴 소셜미디어 글을 보셨다니 화끈거리긴 한데요. 제게 성탄 이야기는 낙인 찍히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실패한 주인공의 이야기이고요. 아까 얘기했던 저만의 독특한 생각은 아니고, 그리스교 전통 성탄절 이야기를 세습하는 건 되게 오래된 이야기이기도 하고, 다양한 변주들로 곳곳에 등장합니다.

간단히 말씀드리면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고, 가부장적인 사회였던 세상에서 보통 정혼이라고 하는 마리아와 요셉은 정혼한 사이거든요. 정혼 했다는 건 약속이 아니라 법적인 구속력을 가졌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당시는 고대사회였기 때문에 여성을 소유물처럼 여기던 시절이었죠. 그런 사회에서 마리아가 요셉이 모르는 아이를 임신했다는 건 당혹스럽기도 하고, 당시 법적으로 부정한 사건이었죠.

지금 시대에서 얘기하면 아비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 미혼모가 된 거죠. 그래서 간음죄에 달할 만큼 아주 무거운 죄 였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당시 사회에서 마리아가 낙인 찍힐 수밖에 없는 존재였죠. 그래서 요셉은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 남들 모르게 조용히 파혼하는 내용으로 기록돼 있는데요. 당시 사회적으로 보면 체면도 상할뿐 아니라 자신의 권력을 침범받았다는 분노가 있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와 아이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기록이 돼 있는데 어쨌든 마리아는 미혼모로 낙인찍히고, 요셉은 마리아와 아이와 함께 하기로 결정한 순간 그도 똑같이 실패자가 되는 거고요. 그렇게 되면 그 아이에 대한 존재는 마리아에겐 당혹스런 존재이고, 요셉에게는 부정한 존재가 되는 거죠. 그래서 당혹스럽고, 부정한 자의 이야기가 성탄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고, 그 셋의 이야기가 성탄의 가장 핵심적인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 김성민 PD: 성탄절의 이야기는 낙인 찍히고,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다라는 얘기를 해주셨었어요. 그럼에도 그 당시 사회에서 부정한 존재로 낙인 찍혀서 버림 받을 수밖에 없었던 마리아, 아기예수. 그로인해 실패한 존재가 된 요셉. 이 세 사람이 서로에게 새로운 기회와 관계가 되어 준다고 했어요. 여기서 우리가 좀 더 주목해봐야 될 점은 무엇일까요?

◇ 자캐오: 그 어떤 존재들이 요셉은 마리아에게 마리아는 아기예수에게 마리아와 아기예수는 요셉에게 어떤 기존사회가 당연하게 여기던 관례를 넘어서 새로운 관계와 기회가 됐다는 것이 성탄의 핵심적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말 그대로 서로를 살리는 관계가 된 거죠. 물론 거룩한 이야기로 보면 신의은총이라고 볼 수 있지만 상식적으로 봤을 땐 요셉이 있었기에 마리아가 살 수 있었고, 지금보면 용감한 선택이라고 보여지고요. 그 선택이 있었기에 아기예수가 살 수 있었고, 마리아와 아기예수가 있었기에 지금 요셉이 기억될 수 있는 것처럼 새로운 기회와 관계가 돼 준 것이 성탄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요. 지금 우리에게도 성탄 이야기는 그렇게 살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김성민 PD: 당연한 관례를 넘어서 새로운 관계가 됐다. 서로를 사랑하고, 그런 관계가 됐다고 이해를 해볼 수 있겠어요. 실패한 우리 시대 존재들, 예수께서는 어떤 방식으로 품으라고 하셨을까요?

◇ 자캐오: 저는 성탄 때만 되면 성탄 이야기를 마주할 때마다 어떤 내몰린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데요. 사실 저도 어릴 적에 부모님이 이혼하셨기 때문에... 개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이혼 때문에 아비없는 자식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고 어려운 경험을 했죠. 저 또한 낙인 찍히고, 내몰린 사람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는데요. 그런 것 때문에 마리아와 요셉, 아기예수의 자리가 내몰린 사람의 자리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요. 그 등장인물 모두가 돌아갈 곳 없이 내몰린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죠.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정혼한 여성이 참 난감한 상황이 되서 어떤 갈등을 했을까, 마찬가지로 내 어머니의 존재인거고요. 아기예수는 보호가 없이는 살 수 없었던 존재라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날 우리 주변에 있는 돌아갈 곳 없이 내몰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그들을 단순히 품어준다, 베풀어준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성서에 기록된 내몰린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을 따르는 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끌어왔던 것처럼 우리도 그들처럼 관계와 세계를 변화시켜 가야되는 것이 기독교 정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성탄 이야기는 언저리 삶을 사는 사람들이 중심으로 다시 회복된다는 차원뿐만 아니라 언저리에 사는 것 자체로 존중받고, 또 다른 중심으로 나아가는 가능성이 지금까지 전해졌다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사회는 조금 달라져야 되지 않을까 라는 도전과 질문을 던져주는 게 성탄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 김성민 PD: 성탄절의 이야기는 언저리에 있는 사람들의 삶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이야기라는 말씀을 해주셨었어요. 신부님, 매년 성탄절이 되면 길거리에서 예배를 드리시죠? 올해는 어떤 예배를 드리시나요?

◇ 자캐오: 올해도 두 번의 거리예배가 있는데요. 오늘은 11시에 새롬도 공원에서 지키고 계시는 톨게이트 노동자분들. 물론 세게 얘기하면 노동존중사회를 얘기했던 문재인 정부에 저도 많은 기대가 있었는데 사실 지금은 반노동정책으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요. 대외적인 사례가 톨게이트 요금소 노동자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도로공사의 사퇴한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상위에 있던 분이 자꾸 노동자분들을 대하는 걸 봤을 때 이전 정부와 뭐가 다른지... 굉장히 가슴이 아팠거든요. 그럼에도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동자분들과 오전 11시에 거리에서 나눔의 집들도 함께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요. 오후 3시에는 그 앞에 있는 광화문 광장에서 이것도 문재인 정부 민원이었던 스텔라데이지호 침몰 사건 실종자 가족분들과. 뜻하지 않게 오늘이 1000일이더라고요. 아시겠지만 지난번 국회에서도 2020년 예산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기다렸었는데 물론 이낙연 총리께서 안타까움을 표현하셨다고는 하지만 침몰사건 예산은 0원이 되는 바람에 실종자 가족과 함께 모여서 시대가 달라지기를 기대했는데 왜 안 달라지고 있는지 또 22명의 실종자를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서 오후 3시에 거리예배를 드리려고 합니다.

◆ 김성민 PD: 말씀하신 것처럼 성탄절에 내몰린 사람들, 톨게이트 노동자들,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분들과 길거리에서 예배를 드리신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끝으로 청취자분들과 가난하고 소외된 분들에게 한 말씀 드리고 마무리하겠습니다.

◇ 자캐오: 계속해서 말씀드리지만 특정한 성스러운 사람들의 이야기라기보단 돌아갈 곳없이 내몰린 이야기, 상처받고 상한 사람들의 이야기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되는 것이 바로 거룩한 이야기라는 것을 성탄이 알려주고 있고요. 그것을 믿고 따라가는 것이 교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교회들이 돈 중심이나 돈을 하나의 도구가 아니라 목적이나 재산처럼 여기며 살아가거나 심지어 교회를 세습하는 형태를 보면서 많은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성탄의 정신에 굉장히 어긋나게 살아가는 걸 보면서 저도 한 명이 기독교 신자로서 가슴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전하고요. 그럼에도 살고자 애쓰는 사람들이 있고, 그런 멋모름들이 파장이 돼서 다시 성탄의 정신을 되찾아 올 것이라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혹시 이 방송을 듣고 계신 분들 중에 돌아갈 곳없이 내몰린 사람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아기예수와 함께 하고 계시다는 걸 꼭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 김성민 PD: 신부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지금까지 자캐오 성공회 신부님과 함께 이야기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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