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에 포상 신청

인천대 독립유공자 발굴단이 관련 서류를 살피고 있다.<사진=인천대>
인천대 독립유공자 발굴단이 관련 서류를 살피고 있다.<사진=인천대>

인천대학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1주년을 맞아 737명의 독립유공자를 또 발굴하여 국가보훈처에 포상을 신청하기에 앞서 8일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설명회를 가졌습니다.

인천대는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765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 국가보훈처에 포상신청을 한 바 있습니다.

이번 포상신청 대상자는 3․1독립만세시위 유공자 3백48명과 간도와 함경도·경상도 지역에서 반일활동을 전개했던 정평청년동맹·안동청년동맹 등 반일활동 유공자 2백34명, 추자도 1·2차 어민항쟁과 제주혁우동맹 등 반일농어민활동 유공자 73명 등 7백37명 입니다.

이들 중 10여 명을 제외하고 모두 판결문을 거증자료로 제출했는데, 그 서류가 무려 3만여 장에 이릅니다.

새로 발굴한 독립유공자 중 눈에 띄는 인물은 전북 장수의 김해김씨와 경남 양산의 김병희·김교상 부자, 독립군 소위 출신의 계기화 지사 입니다.

김해김씨는 호남 연합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교수형으로 순국한 전해산의 부인입니다.

족보나 제적등본에도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남편이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일본군경의 모진 압박을 겪었다.

이후 교수형으로 순국한 남편의 유해가 대구감옥에서 전북 장수로 운구되자 장례를 치렀으며, 상여가 집 앞 개울을 건너자 집으로 들어와서 극약을 먹고 자결하는 바람에 남편의 상여가 되돌아와서 쌍상여로 장례를 치른 분 입니다.

김병희·김교상 부자는 경남 양산의 의병장으로 이들 부자는 모두 정3품관을 지냈으며, 양산의 거부로 동향의 서병희 의병부대에 거금 5천원(당시 2천석 쌀값)을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사병 형식의 산포수를 중심으로 의병을 모집해 일본군과 격전을 치른 후 붙잡혀 손바닥을 철사로 꿰어 양산시장에 조리돌림을 당한 후 피살, 순국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부자입니다.

계기화 지사는 독립군 소위 출신으로 1932년 통화현 군관학교를 거쳐 한국인과 중국인 혼성부대였던 요녕민중자위군에 참여하여 일본군과 싸웠고, 양세봉 장군이 이끈 조선혁명군에 참여해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자신의 삶과 독립군과 관련한 내용을 정리·기록한 자료는 독립기념관에서 중요기록물로 간행된 바 있었지만, 정작 기록물의 주인은 아직 포상이 안 된 상태입니다.

이밖에 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 전신)을 3차례에 걸쳐 10년이 넘게 옥고를 겪었던 함북 명천 출신의 황금봉 지사도 이번 포상 신청대상자에 올랐습니다.

조동성 총장은 “인천대의 독립유공자 발굴 작업은 약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1천5백명이 넘었다"며 "매년 1천여 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민족대학으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강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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