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소래역사관 앞에 전시돼 있는 협궤열차인 혀기 7형 증기기관차 <사진 = 김도하 기자> [ 경인방송 = 구민주 기자 ]


(앵커)
 

1995년. 수원과 인천을 잇는 이른바 ‘꼬마열차’인 수인선 협궤열차가 마지막 운행을 했습니다.


50여년 간 물자와 사람을 실어 나르던 협궤열차는 지역민들의 삶 그 자체였는데요. 이후 이 열차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요?


경인방송은 현재 남아있는 협궤열차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철도유물의 가치와 보존의 의미 등을 짚어보는 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수인선 협궤열차가 어디에 얼마나 남아 있는 지 추적했습니다. 구민주 기자의 보돕니다.

 

(기자)


수인선은 수원역과 인천항을 잇는 총 52㎞의 사설철도로 1937년 정식으로 운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수인선은 궤간이 표준궤(1,435㎜)보다 좁은 762㎜여서 협궤열차로 불렸습니다.


협궤열차는 동력을 담당하는 증기기관차와 디젤동차, 그리고 화물을 싣는 화차와 승객이 타는 객차로 구분됩니다.


1971년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수인·수여선 철도경영에 대한 소고’에서는 당시 57명이 정원인 객차는 운용할 수 있는 것이 17량이었고, 화차는 108량이 수인선과 수여선으로 나눠 운영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열차의 동력인 증기기관차는 수인선의 경우 4량, 동차는 3.6량이었습니다.


이후 노선이 줄고 적자가 쌓였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 기록이 마지막 통계와 비슷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홍현영 수원학 연구센터 연구원]

“수인선도 1977년까지만 화물은 운영한다. 1977년까지만 증기기관차가 있다는 거다. 이게 거의 마지막 통계와 유사할거다. (열차의) 수량을 늘리거나 투자를 더 안했을 것 같다. 박물관 이런데서 요구하는 몇 개 빼곤 폐처리 됐을꺼고 동차도 마찬가지였을거다”


그렇다면 이 열차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협궤는 당시 수인선이 유일했기 때문에 해당 열차들을 재사용하긴 어려웠습니다.


때문에 대부분이 폐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경인방송 취재진은 현재 남아있는 수인선 관련 협궤열차들을 인터넷 자료와 기사, 논문, 문화재청에서 실시한 근대문화유산 철도분야 유물현황 등의 자료를 토대로 행방을 추적했습니다.


그 결과 의왕, 용인, 서울, 강원도 등의 지역에서 당시 수인선에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혀기형 증기기관차 6량과 화차 2량, 동차 1량과 객차 4량을 확인했습니다.


또 민간 등에서 사용하다 폐기했거나, 부품 일부를 갖고 있는 사례도 찾아냈습니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철도가 유물로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특히 수인선의 경우 당시 서민들의 삶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잘 지켜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인터뷰/ 조성면 문학평론가 (수원 지혜샘도서관장)]

“추억의 열차로 삶의 일부분으로서 사라지고 난 뒤 비로소 가치를 재인식하는 철도였다. 전철로 거듭나 반갑지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문화와 현대 편리성 공존하는 문화다양성 생각해야겠다”


근대교통문화에 대한 역량이나 관심사를 보여주는 좋은 시험대이자 바로미터.


오늘날 우리가 수인선 협궤열차의 가치를 다시 찾아야 할 이유입니다.


경인방송 구민주입니다.


[공동취재= 구민주·한준석·김도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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