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뉴딜 사업지 선정...세계 음식문화 거리 디자인

러시아, 고려인 여성들이 함박마을을 산책하고 있다 <사진=안덕관 기자>
러시아, 고려인 여성들이 함박마을을 산책하고 있다 <사진=안덕관 기자>

문학산 남쪽 아래 언덕배기에 자리한 연수구 함박마을은 오래된 건물들 속에서 각국의 외국인들이 복작복작하게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지난해 11월 도시재생 뉴딜 사업지에 선정되면서 기존의 낙후된 이미지를 벗어나, 이국적인 음식과 분위기를 앞세운 ‘이국적인 미각의 도시’로 거듭나려고 합니다.

연수구는 새로운 방식으로 함박마을을 가꾸기 위해 사업 방식을 검토 중입니다.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통해 건물을 완전히 철거하고 다시 지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외국인들이 쫓겨나 다양한 문화가 숨 쉬는 상생 지역으로 발돋움할 수 없습니다. 이에 연수구는 마을 고유의 특성을 살리되 원주민과 외국인이 상생하는 것을 최종적인 목표로 삼았습니다.

함박마을에 거주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여성들 <사진=안덕관 기자>
함박마을에 거주하는 카자흐스탄, 고려인 여성들 <사진=안덕관 기자>

함박마을에 외국인들이 몰려든 것은 3~4년 전. 처음엔 중국인과 몽골인들이 이곳을 찾았습니다. 무보증에 값싼 대규모 원룸촌이 형성돼 있고 남동공단과 송도 중고차단지 등과 가깝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그러다 차츰 고려인, 러시아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유목민 후손들이 밀물처럼 들어왔습니다. 연수구에서 공식적으로 집계한 거주자는 약 1만명. 이 중 외국인은 약 5천명이며, 실거주자만 따지면 6천명은 족히 넘을 것이라는 게 부동산 업자의 설명입니다.

그래서 함박마을에는 이색적인 러시아어 간판이 빌딩마다 걸려 있습니다. 행인들이 러시아어로 말하며 거리 곳곳에선 이국의 민속적인 음악이 흐릅니다. 이곳의 자랑은 초원지대를 누비던 유목민족의 입맛과 향수를 자극하는 음식인 할랄, 케밥 등의 본토 음식. 쾌활한 성격에 붙임성 좋은 카자흐스탄 여성 코잘(30대)씨가 종업원으로 있는 ‘카라반(Karavan)’은 러시아 전통음식을 맛보기에 좋은 장소입니다. “매우 부드럽다”고 코잘씨가 묘사한 대로 육즙이 배어 나오는 양고기는 적당히 짭조름하고 잘 씹히며, 빵 할렙 레포시카는 베이글처럼 쫀득쫀득합니다.

함박마을 초입에 위치한 빵집 ‘아써르티(Асорти)’도 유명합니다. 가게에 들어서면 갓 구운 큼직한 러시아 빵들이 고소한 냄새를 풍깁니다. 호밀빵, 삼사, 라스테가이, 양귀비빵 등이 유리 진열대에 놓여 있는데, 국적을 불문한 손님들이 끊임없이 사가는 터라 제빵사들은 쉴 틈이 없습니다. 이곳의 주인 까리나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3세대. 지역 주민들에게 생소하지만 맛있는 빵을 제공하는 게 그의 목표입니다.


함박마을 상권에 늘어선 불법주차 차량들 <사진=안덕관 기자>
함박마을 상권에 늘어선 불법주차 차량들 <사진=안덕관 기자>

이처럼 무연고지에 뿌리내린 외국인들은 함박마을을 삶의 터전으로 가꾸고 상생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다만 다가구 원룸주택에 15~20가구가 다닥다닥 몰려 사는 데다, 지어진 지 25년을 넘긴 건물들이 즐비해 낙후 지역이라는 인식이 지역 주민들 사이에 퍼져 있습니다. 또한 보증금 없이 사람을 들이다 보니 주거부정 등 신원이 불확실한 외국인들도 상당수 존재해 여러 중대 범죄 사건이 발생한 점은 원주민의 불안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좁은 이면도로 좌우에 외국인의 불법주차 차량들이 빼곡히 늘어선 모습은 경관을 해치는 요인입니다.

연수구는 함박마을을 부흥시키기 위해 세계음식 문화 공간을 조성하고 거리 디자인도 설계하는 등 문제점을 개선할 계획이지만, 원주민과 외국인의 상생이 선결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연수구는 이들을 교류시키기 위한 분위기 조성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구 관계자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뤄져야만 사업이 종료된 뒤에도 마을이 자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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