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인터뷰] 이기봉 5.18 기념재단 사무총장

이기봉 5.18 기념 재단 사무총장. <사진 제공=5.18 기념 재단>
이기봉 5.18 기념 재단 사무총장. <사진 제공=5.18 기념 재단>

■ 방송 : 경인방송 FM 90.7MHz <김성민의 시사토픽>(월~금 07:00~09:00)

■ 진행 : 김성민 PD

■ 인터뷰 : 이기봉 5•18 기념재단 사무처장

[인터뷰 오디오 듣기]https://bit.ly/3bvN54j

◆ 김성민 : 오늘은 5.18 민주화 운동 41주년을 맞는 날입니다.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그날,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5.18 기념 재단 이기봉 사무처장과 나눠보겠습니다. 사무처장님 안녕하세요.

◇ 이기봉 : 안녕하세요.

◆ 김성민 : 먼저 5.18 기념 재단에 대해 소개 해주실까요?

◇ 이기봉 : 네. 5.18 그 첫 학살 책임자 처벌 투쟁이 한창이던 1994년에 국민과 해외 동포들의 성금과 또 5.18 참여자들의 피해 보상 출연으로 만들어졌고, 5.18 정신을 계승하자는 취지에서 많은 분들이 참여해 주셔서 설립되었습니다.

그동안 5.18정신 계승과 진상 규명, 국제 연대, 교육 사업 등의 사업을 활발하게 지금까지 펼쳐오고 있습니다.

◆ 김성민 : 5.18 기념재단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들이 이뤄지고 있나요?

◇ 이기봉 : 5.18 진실 규명과 관련된 증언 채록과 연구 활동, 그리고 초중등 교과서, 5.18 교과서 교육 자료, 광주 인권상과 광주민주포럼 등의 연대 사업, 5.18 언론상, 문학상, 장학사업 등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올해에는 미얀마 시민들의 투쟁을 응원하는 사업과 함께요. 또 5.18 때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한 위르겐 힌츠페터라는 기자가 있습니다. 올해부터는 위르겐 힌츠페터의 정신을 기리는 국제 보도상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 김성민 : 그렇군요. 계속해서 우리가 5.18 민주화 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해 나아가야 할 텐데요. 그래서 5.18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된 당시 배경과 그 과정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떻습니까?

◇ 이기봉 : 1979년부터 시작이 되죠. 권력 장악을 꿈꾸던 전두환 비상 계엄군을 앞세워서 광주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살상을 하는데요. 광주 시민들이 저항했지만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진압이 됩니다.

하지만 이런 진상 규명 요구, 또 민주화 요구가 국민 쪽 운동으로 전개되면서 노태우 등 학살 책임자를 감옥에 가두고 처벌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발포 책임자 문제, 민간인 학살, 행방 불명자 등의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 김성민 : 그래요, 맞습니다. 그 당시에 언론들은 5.18 민주화 운동을 어떻게 보도 했나요?

◇ 이기봉 : 당시 국내 언론들은 계엄 당국이 써준 대로 5.18폭동으로 군대들이 더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보도했습니다. 반면에 외국의 언론들은 계엄군의 삼엄한 경계를 뚫고 취재를 해서 오히려 우리 국민들은 외국의 언론들을 통해서 광주 상황을 알게 되었고요.

앞에서 말한 위르겐 힌츠페터가 대표적인 그러한 기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 김성민 : 5.18 민주화 운동 관련 진상 규명과 왜곡에 대응하는 활동도 하신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활동인가요?

◇ 이기봉 : 일단은 각종 제보와 증언을 받고 있고요, 학술 연구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상 규명을 국가적 차원에서 할 수 있도록 그런 법률 제정 활동도 촉구하는 활동을 쭉 해쳐왔고요.

왜곡하는 사례 중에 북한이 5.18을 사주했다거나, 북한군이 내려와서 일으킨 폭동이라고 하는 것이 대표적인 왜곡 주장인데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도 재판을 통해서 민, 형사 적인 재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전두환 회고록도 역시 마찬가지이죠.

헬기 사격이 없다고 주장을 하고 오히려 이를 목격한 사람을 비난했어요.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도 또 법률적인 절차를 진행해서 실형을 선고 받게 하고 국민에게 관심이 높은 사람들에 한해서 적극적으로 대행하고 있습니다.

◆ 김성민 : 그렇군요. 그리고 5.18 기념 재단에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와 함께 민주화 운동의 진실을 밝히는 활동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조사하시면서 최근에 확보하신 진술이나 제보가 있을까요?

◇ 이기봉 : 최근에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에서 발표한 내용인데요. 당시의 광주역과 교도소 감시탑 이쪽에다가 M60 기관총을 설치하고 M1의 조준경을 배치해서 시민을 사살했다는 그런 진술 다수를 확보 했습니다.

그리고 5월 20일에는 전남 구청 앞에서 집단 발포가 있어서 50여 명 되는 분들이 사망한 날인데요.

금남로 건물 옥상에 저격수를 배치해서 조준 사격을 했다는 그런 진술과 광주 교도소와 광주-화순 간 도로를 차단하고 민간인을 학살했는데, 당시 미국 국방정보부 비밀 청문회는 "광주는 한국판 미라이 사건이다." 이렇게 했을 정도로 참혹했다고 합니다.

이 미라이 사건은 베트남 전쟁 중에 미라이에서 일어난 최악의 민간 학살 사건인데요, 미군이 미라이인 약 500명을 사살한 사건이에요. 마치 그때 광주를 그 사건에 비유해서 '참혹했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 김성민 : 말씀하셨던 내용 중에 암매장에 관한 제보를 구체적으로 말씀 해주실 수 있을까요?

◇ 이기봉 : 구체적인 제보나 이런 부분들은 저희들이 상세하게 말씀드리기 쉽지 않고요, 저희들이 기초 조사를 좀 합니다. 전체 보고가 들어오면, 신빙성이 높은 부분들은 진상 조사 위원회에 연락을 해서 함께 발굴을 하거나 과학적인 조사를 진행합니다.

◆ 김성민 : 그래요. 그리고 조준 사격 말씀도 하셨는데, 조준경을 설치 하고 민간인들, 시민들을 상대로 사격을 했다는 것이죠? 당시 계엄군이?

◇ 이기봉 : 네, 이제까지 계엄군이 계속 말하는 논리는 '자위적 차원에서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이런 논리를 계속해서 펼쳐왔는데, 이런 증언 그리고 자료들을 기초로 한다면 이것은 자위적 차원이 아니고 '아주 조직적이고 어떤 전문 저격수를 배치해서 기관총으로 살상을 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 김성민 : 아무튼 말씀하신 것처럼 구체적인 진상 규명이 이루어져서 세상에 낱낱이 밝혀지기를 바라겠습니다. 5.18 민주화 운동 관련 법률들이 지금 현재 어떻게 제도화 되어 있나요?

◇ 이기봉 : 한 4가지 정도의 법률이 있는데요. 1990년에 5.18 보상이 처음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이때는 진상 규명도 되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반발이 좀 심했는데 여당인 민자당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해서 많은 한계가 있었고요, 그리고 1995년에는 5.18 특별법이 진행되어서 전두환, 노태우 등의 책임자를 처벌 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2002년에는 5.18 위로금이 지급돼서 돌아가신 분들 유공자를 예우하고 국립 묘지에 모실 수 있게 됐고요. 2018년에는 진상 규명 특별법이 만들어져서 조사 위원회가 구성되어 활동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작년 말에는 5.18 특별법이 개정돼서 악의적으로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행위는 또 처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 김성민 : 5.18 기념 재단 측에서 직접 보시기에, 더 필요한 법률이나 제도 같은 게 있나요?

◇ 이기봉 : 저희들은 현재는 5.18 보상이나 요법이나 이런 부분들이 당시에 민주화 운동에 대한 충분한 평가 속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고, 일반 참전 유공자 이런 수준으로 노동력 상실로 해서 이행되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5.18 유공자들이 항상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하나 있고요.

또 하나는 저희들이 5.18 특별법이나 이런 것들을 통해서 왜곡하는 행위에 대해 처벌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실은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그런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법률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이런 부분들을 더 많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더 정착시키면서 또 여론을 주도해 나아가는, 건강한 여론을 만들어가는 쪽에서 솔선수범하는 자세가 필요하겠다 봅니다.

◆ 김성민 : 네, 잘 알겠습니다. 또 5.18 민주화 운동 기록물이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어 있잖아요? 그만큼 국제 사회에도 공인한 민주화 운동이라 생각이 되는데 어떻습니까?

◇ 이기봉 : 5.18 민주화 운동은 우리나라에서의 평가만이 아니고 국제적으로도 높은 평가 받고 있어요. 특히 아시아에서 국민의 힘으로 군부 독재를 종식시키고 민주화를 성공시킨 사례로는 거의 유일합니다.

◆ 김성민 : 그래요.

◇ 이기봉 : 그래서 아시아 국가의 민주화에서 크게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미얀마와 태국 등에서도 민주주의가 크게 유혹 받고 있는 상황인데 여기에서도 대한민국,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주목하는 그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민주주의를 겪고 있는 국제사회와 연대하면서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하고 튼튼한 민주주의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 김성민 : 5.18 민주화 운동이 41주년을 맞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꼭 기억해야 될 것은 무엇인가 돌아볼 수밖에 없는데 한 말씀 더 해주시죠.

◇ 이기봉 : 5.18은 과거의 문제 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여전히 유가족과 행방 불명자 유가족의 아픔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나 인권의 가치가 5.18 같은 큰 희생을 치르고 얻은 것이기 때문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역할이라 봅니다.

◆ 김성민 : 마지막으로 청취자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주시고 마무리를 해보겠습니다.

◇ 이기봉 : 5.18을 기억해주시고, 그 아픔을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5.18 정신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더 손을 내밀고 함께 가는 것이라고 봐요. 5.18 정신으로 우리 사회가 더 따뜻해지고, 그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고요.

저희들도 또한 여러분들의 관심에 걸맞게 5.18정신과 같이 이겨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김성민 : 네,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기봉 : 감사합니다.

◆ 김성민 : 지금까지 5•18 기념재단 이기봉 사무총장과 말씀 나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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