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제20대 대통령 선거 후보에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10일 오후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 합동연설회에서 꽃다발을 받은 뒤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경인방송 = 한준석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여당 후보로 선출됐습니다. 


'비주류 흙수저' 출신으로 공장에서 일하던 어려운 유년시절을 딛고 변호사를 거쳐 경기도지사 자리에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그가 걸어온 길을 한준석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1978년 당시 야구 글로브 공장 '대양실업' 소년공으로 일하던 시절 모습. 이 후보는 그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 8월에 합격했다<사진=연합뉴스>


이재명은 경기지사는 1963년 경북 안동 태생입니다.


본래 5남 4녀지만, 누이 둘이 일찍이 세상을 뜨는 바람에 5남 2녀 중 다섯째로 자랐고 열 살에 아버지가 돌연 집을 떠난 뒤 어머니와 일곱 남매가 화전을 일구며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터무니없이 가난했던 이 지사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만 12살 때 경기도 성남으로 이주해 영세공장에서 소년공 생활을 했습니다.


실제로는 취업할 수 없는 소년공이었지만, 다른 사람의 신분과 이름을 빌려 가며 거친 공장생활을 이어갔고 수많은 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시 사고 때문에 손가락에는 아직도 고무조각이 박혀 있고, 후각세포도 55% 이상 괴사해 현재도 냄새를 잘 맡지 못합니다. 


프레스 기계에 팔이 눌리는 큰 사고도 당했는데 당시 당한 왼팔 장애로 인해 병역 면제를 받았습니다.

이재명 후보가 1989년 사법연수원 졸업식에서 모친과 기념촬영하던 모습<사진=연합뉴스>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도 그는 고입·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한 뒤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중앙대 법대에 입학했고, 1986년에는 사법고시에 합격했습니다. 


연수원 성적도 준수했지만, 판검사 임용을 앞두고 갈등을 거듭했습니다. 


군사정권의 주구가 되지 않겠다는 소신과 집안형편 사이의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인권변호사였던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의를 듣고 그의 철학에 매료됐고, 노동 인권변호사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변호사 이재명은 성남에서 주로 노동과 인권사건 변호를 맡으며 민변 활동을 했습니다. 


시민들과 뜻을 모아 '성남시민모임'을 창립하며 시민운동에 뛰어들었고 '백궁‧정자지구 용도변경 특혜의혹'과 '파크뷰 특혜분양' 등을 제기해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2004년 성남 구시가지의 대형병원들이 문을 닫으면서 의료공백이 심각해지자 직접 시장이 돼 시립의료원을 만들겠노라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2010년 그는 51.2%의 득표율로 성남시장에 당선됩니다.


첫 임기 시작 11일 만에 전국 지자체 중 최초로 모라토리엄(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등 파격적인 시정 운영으로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재선까지 거치며 SNS상의 열성적 지지층을 중심으로 '전국구 정치인'으로 급부상했고 야권의 잠룡으로 몸값을 높이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와 각을 세워가며 추진한 무상교복, 공공산후조리 지원, 청년배당 등 보편적 복지사업은 타 지자체로 퍼져나가며 자타공인 그의 정책 브랜드가 됐습니다.

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하는 촛불집회에 당시 문재인 전 대표와 함께 참석한 모습<사진=연합뉴스>


2016년 11월 시작된 촛불 정국에서 '박근혜 탄핵·구속' 같은 거침없는 돌직구로 탄핵 공간에서 주가를 올리면서 대선주자 반열에 올랐습니다.


비록 당시 경선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에 패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경기지사에 도전해 경선과 본선 모두 승리하며 16년 만의 진보진영 경기도지사가 되는 기록을 썼습니다.


경기도정을 이끌면서는 '기본소득'을 비롯해 기본금융, 기본주택 등 자신의 기본 시리즈 정책 어젠다를 하나씩 구체화하며 대권 재도전의 칼을 갈았습니다.


때로는 정부 재정당국과 각을 세우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코로나 재난지원금'을 전국민에 보편 지급해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에 협조하지 않는 신천지 교단에 강제 역학조사를 지시하며 강력히 대응하는가 하면, 도내 계곡 곳곳에 들어차 있던 불법 시설물들을 모두 철거·정비하는 등 저돌적인 행정가의 면모도 보였습니다.


또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자 선별 지급이란 당정 입장과 반대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을 주장했습니다. 


지난해 7월 '친형 강제입원 관련 허위 사실 공표 혐의를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면서 이 후보는 대권 재도전을 위한 족쇄를 완전히 벗었습니다. 


이후 여권 대선후보 지지율 1위 자리를 한 차례도 내주지 않았고 경선 막판 이 후보를 겨눈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도 대세론을 뛰어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오늘(11일) 대전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민주당 대선후보로서 첫 행보에 나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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