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문화원 부원장 신왕수 이학박사. <사진자료=케이지 랩㈜>
양평문화원 부원장 신왕수 이학박사. <사진자료=케이지 랩㈜>


양평문화원 부원장 신왕수 이학박사가 SNS를 통해 자신의 고향인 양평의 각리의 유래를 지속적으로 연재해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신 박사는 우선 "한반도의 기둥과 척추 태백산맥이 남으로 뻗어 내려가다가 쇠스랑처럼 뻗친 마식령산맥, 오장육부를 감싸는 갈비뼈인듯 차령산맥에서 광주산맥이 남서로 달리다 멈춰 1천157m 용문산을 빚었다"고 밝혔습니다.

양평군 강하면 전수3리 출생인 신 박사는 "동부승지를 지낸 실학자이며 동국여지도, 훈민정음운해, 산경표, 도로고를 저술한 여암 신경준(1712~1781·고령신씨 18세 양평군 강하면 입향조 어은 신기한의 양자 보낸 둘째 아들 신운 의 증손자)은 '동국문헌비고-산경표'에서 백두대간 중 오대산 두로봉에서 두물머리로 내리뻗은 한강기맥은 오대산에서 금물산을 지나 싸리봉, 용문산, 용두산, 청계산을 지나 두물머리로 내려앉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강상면과 강하면을 제외한 양강 북쪽 10개면 지형의 근골을 이루게 된다"며 "1530년 청백리, 이조판서 신공제, 윤은보, 이행, 홍언필, 이사균 편저 '신증, 동국여지승람'에서 양평을 '좌거룡문후침호(左據龍文右枕湖)라! 왼쪽은 용문산을 의지하고, 오른쪽으로는 호수를 베고 누웠구나!' 하였으니 얼마나 평안한 형세인가!"라고 역설했습니다.

그러면서 "광주부 양근(현 남양주시) 출신 나주 정씨가문 초기 천주교 명가 다산 정약용과 아우들인 정약전, 정약종 형제 등이 능내에서 관군을 피해 양강을 헤엄쳐 건너 계곡 산속으로 숨어 들어간 곳이 광주 퇴촌 천진암인데 능내 남쪽 맞은편 양강 건너편이다"면서 "왕조의 성이 바뀌는 이성계의 역성혁명에 반대한 두문동 72현 중 필자의 선조 예의판서 순은 신덕린과 아들 공조참의 호촌 신포시, 신덕린의 친구이자 사돈이며 아들 신포시의 장인인 경주김씨 수은 김충한은 개경에서 나와 호남인 광주, 남원으로 숨어 들어갔다'고 강조했습니다.

종합 건강기능식품 전문기업 케이지 랩㈜, 발효 전문기업 엑센도 바이오팜㈜ 회장이기도 한 신 박사는 양평군 기업인협의회장을 역임했고 제41회 무역의날 153만불 달성 백만불 수출탑과 제51회 무역의날 800만불 달성 500만불 수출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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