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인방송 안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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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1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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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 산골, 1인 여성 농부
최정 시인의 세 번째 시집
노동과 침묵의 시학
시인의 독한 마음과 높고 따뜻한 마음이 함께 담긴 시편들
최정 시인의 세 번째 시집이 나왔다. 시인은 도시 생활을 접고 2013년부터 경북 청송의 작은 골짜기에서 혼자 농사를 짓고 있다. 밭 한귀퉁이에 여섯 평짜리 농막을 지어 놓고, 일천여 평의 밭농사를 지으며 사는 것이 생활의 전부라는 시인.
조금씩 갈라지고 있다 // 씨감자 심고 덮어 준 흙이 / 가늘게 떨린다 // 흙을 밀어 올리느라 / 애쓰기를 // 사나흘 // 흙 틈으로 / 누르스름한 얼굴 / 가까스로 내밀고 하는 말 // 간신히 살아간다 // 무거운 말씀 / 감히 받아 적었다 // 따가운 볕 아래 / 감자 싹은 한나절 만에 푸르뎅뎅해진다 // 진초록 잎으로 부풀어 오른다 (「감자 싹」 전문)
“인간의 노동이 자연의 노동 앞에 겸허해지는 최고의 순간”(최원식)을 “감히 받아 적”은 시집 『푸른 돌밭』에는 고된 노동 속에서 삶과 시를 함께 일구어온 시인의 독한 마음과 높고 따뜻한 마음이 함께 드러난다. 감자밭의 독사를 “내장이 터지고 머리가 납작해지도록 / 내리치고 또 내리”치던 시인은 “손톱만큼 자란 양배추 싹을 쏙 뽑아 먹”는 새끼 고라니를 너그러이 눈감아 준다. 감자 싹이 간신히 흙을 밀어 올리며 들려주는 “무거운 말씀”을 “감히 받아 적”는 시인은 자신의 마음밭도 아름답게 일구기 위해 애를 쓴다.
“청송 작은 골짝 끝자락에 둥지를 틀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고백하는 최정 시인은 “작은 골짝의 품에 안겨 받은 위로”가 자신을 살렸다고 말한다. “농사일을 하며 몸이 느끼는 대로 생활하는 단순한 삶의 일부”가 시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이 시들의 주인은 흙과 풀들”이라고 털어놓는다.
- 노태맹 시인은 시집 발문에서 “노동하고, 기도하고, 밤늦게 시를 쓰는 수도자의 모습을 그이의 시에서 나는 보았다. 나는 그것을 시 앞에서의 침묵, 시를 위한 침묵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때 침묵이란 단순한 말없음, 묵언이 아니다. 그것은 사유로서의 침묵이고, 노동과 행동을 전제로 한 침묵”이라고 소개한다. 최정 시인은 노동하는 수도자처럼 노동이라는 침묵의 사유를 통해 자연의 말을 듣는다. 그리고 그 말을 시로 기록함으로써 대부분의 우리가 가는 반대 방향에서 사회에 도달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