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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여성 독립운동가 숨겨진 활약상 부각...조사와 기록, 연구 활발히 이뤄져야
인천 / 사회 강신일 (riverpress@ifm.kr) 작성일 : 2019-02-27, 수정일 : 2019-02-27
앞줄 가운데 곽낙원 여사와 뒷줄 가운데 김구 선생 <출처-국가보훈처 공식 블로그>
[ 경인방송 = 강신일 기자 ]
(앵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인천지역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숨겨진 활약상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당시 독립운동이 성별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입니다.

다만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조사와 기록이 여전히 부족한 점은 아쉬움으로 다가옵니다.

강신일 기자의 보도입니다.

(기자)

인천감리서에 투옥된 아들 김구 선생을 따라 인천에 온 곽낙원 여사.

인천감리서 부근 내동은 곽 여사가 아들의 옥바라지를 위해 허드렛일도 마다 않던 곳입니다.

곽 역사의 헌신적 희생은 임시정부를 이끄는 독립운동가 김구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이러한 숭고한 뜻을 기려 인천대공원에는 지난 1997년 김구 선생과 곽낙원 여사의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국내 최초의 미국 유학생으로 알려진 김란사 열사는 결혼과 함께 인천과 연을 맺었습니다.

이후 이화학당 교사로 재직하며 부녀자 계몽운동에 앞장섰고 이 때 유관순 열사를 가르쳤습니다.

임시정부에서 남편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최선화 열사, 독립운동을 위한 군자금 모집을 하다 인천에서 체포돼 옥고를 치른 이순승 열사까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동안 조명받지 못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상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남자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당시의 독립운동이 성별과 신분에 구애받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역사입니다.

하지만 인천의 여성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조사와 연구, 기록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보훈처 기록에 나타나는 인천의 독립유공자는 모두 20명으로 이 중 여성은 최선화 열사가 유일합니다.

주요 활동지역이 아닌 본적으로 분류, 관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천에서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은 이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이들을 찾는 노력은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인터뷰 - 배성수 인천도시역사관장]
"기독교가 내리교회를 중심으로 뿌리를 내리고 영화여학교가 조성되면서 인천 여성들의 독립운동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일찍 시작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를 조사하는 과정에 본적지로만 검색이 되고 실제 활동지가 거주지는 확인이 안되다 보니 여성 운동가들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만세운동, 군자금 마련 등 여러 방법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들을 찾는 일이 더욱 활발해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경인방송 강신일입니다.

강신일 riverpress@ifm.kr